사회

부끄러움을 아는 자의 길은 죽음 뿐인가?

jayjean 2009. 5. 26. 23:50

"사람에게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부끄러워할 일이 없을 것이다."<맹자>

009년 5월 23일 새벽에 죽은 한 남자는 부끄러움에 죽었다.

본인이 몰랐다고 주장해 왔고, 검찰도 한 피의자의 진술 외에 증거를 제시하지도 못했고, 심지어는 그게 진짜 그 피의자가 한 말인지 아니면 매일 같이 스포츠 중계라도 하듯이 수사 브리핑이랍시고 해댄 검찰내 빨대의 작문인지도 모를 그 '의혹'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그가 믿어왔고, 이루고자 했던 가치가 조롱받는 현실, 또 그와 같은 길을 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고생을 겪게하는 현실이 부끄러워서 갔다.
따지고 보면 그가 시국 변론이란걸 처음 맡게된 것도 부끄러움 때문이란다. 민사사건 수임료를 꼭 줘야 하냐고 묻는 아낙네의 물음에 부끄러움을 느껴서 였단다. 그 뒤로 시국 사건으로 잡힌 학생들 변론을 하면서 그들이 가진 조국과 민족이란 가치에 대한 열정에 부끄러워 책도 보고 시위 현장에도 나갔단다.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했다가 끌려간 노동자에게 부끄러워 정치를 하기로 했단다. 지역감정에 밀려 계속 떨어지면서도 출마한 이유가 믿고 찍어준 사람들에게 부끄러워서 였단다.

아주, 아주 조금이라도 원칙이란게 뭔지와 합리적인게 어떤것인지 고민해 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많은 타협과 부끄러운 일의 연속인지 알거다.
변변찮은 조직 생활을 하면서도  조금만 못본채 따라가면 된다는 그 '조직의 생리'란 것을 누구나 알거다.

뭐 굳이 한국이라는 나라의 고질적 병폐 운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원칙주의자로써, 또한 합리주의자로써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는 알수 있다.

내가 아는, 아니 아마도 모르는 사람까지 포함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식의 타협을 강요받고, 어떤 이익을 위해 스스로 따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정치인의 수뢰를 욕하면서도 주변에 돈이 좀 생긴 사람이 있으면 술 한잔이라도 공짜로 얻어먹고 싶어하는건 인지상정이라 한다. 정치인들의 세금 낭비를 욕하면서 내가 공금을 쓸 일이 있으면 가능하면 최대 한도로 쓰고 싶다. 부동산 값 올려놨다고 욕하면서 우리 아파트 가격은 오르길 기다린다. 부끄러움을 느끼기는 커녕, 그 놈들 해쳐먹는거랑 내가 이 정도 하는거랑 비교가 되냐고 되려 울컥하기까지 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

이런 나라에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고, 게다가 대통령까지 해버렸으니 어쩌면 그는 옜날 많이 듣던 말처럼 "(이 나라에선) 대통령 깜이 아니었는 지도 모른다.
선거날 한표 줬으니 내가 원하는건 다 하라는 사람들에게 '반대하는 세력이 너무 많다'고 하소연하면 돌아오는건 '대통령으로 만들어 줬더니 그것도 못한다'는 핀잔만 들어왔다.
대학 안 나왔다고 언론과 정치인들에게 내내 뒷다마 까인 것도 모라자, 전국의 장삼이사들도 입에 달다시피 했던 말이 "노무현이 지까짓게.." 같은 말들. 
스스로 내세운 가치들을 실현하려다 보니 다양한 사회 계층의 요구를 합리적으로 수용해야되고, 적당히 타협해야 하는 현실이 부끄러워 유달리 변명이 많았던 그 사람. 그거 땜에 임기 내내 말을 하지말라는 비아냥에 시달리고.

퇴임 후 진짜로 정치인이 아닌 인간으로 자신을 좋아하는 fan들 앞에서 "아 기분좋다!"라고 소리친건 결코 빈말로 들리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이제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조롱당하다 죽은 것은 부끄러움을 알려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자살이라기에 미심쩍은 구석도 제법 되지만 일단 받아들인다.

갑작스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은 사람에 대해 좋은 소리만 하고, 애도한다고 모여드는 게 썩 좋게 보이질 않는다. 이젠 아무런 위협도 되지않는 진정으로 '죽은' 권력임이 확인되니 경계심을 풀어서 하는 행동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이 보여서다.

그래서 난 조문이란걸 가지 못하겠다.
너무 부끄러워서다.
그 대신, 이제 부끄러움을 더 많이 느끼기로 했다.
그 부끄러움이 쌓이고, 모이다 보면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다.
그 날을 위해 단돈 만 원이라도 정치후원금을 내든가, 사회단체 후원금을 내는게 진정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씻을수 있는 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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