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저작권 논쟁의 오해
http://www.zdnet.co.kr/itbiz/column/anchor/iwillbe/0,39033556,39155965,00.htm
블로그 포스팅 논쟁에서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사실 윤종수(서울북부지원 판사) 2007/0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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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블로그를 즐기는 이유 난 블로그를 즐겨 구독한다. 나의 RSS 리더에 등록된 블로그들은 대략 30여개 정도이다. 대부분 부지런히 포스팅을 하는데다가 영문 블로그도 꽤 있어서 매일 꼬박 꼬박 읽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내가 즐기는 블로그들이 모두 수준급의 정보를 보내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1인 미디어로서의 역할이나 파워 블로거의 영향력 따위를 인정하기 때문도 아니다. 내가 그 블로그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특유의 ‘진지함’이다. 그 바쁜 와중에도 밤을 새가며 자신의 견해를 정리하는 성실함과 다른 이의 견해에 즉각 트랙백을 날리며 소통을 시도하는 적극성, 그리고 이슈를 다루는 상상력 풍부한 재치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진지함을 느낀다. 이러한 진지함이 내가 생각하는 블로그 문화의 강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진지함을 과도한 ‘심각함’으로 잘못 발휘하는 경우이다. 법관으로 15년 가까이 재판에 임하면서 얻게 된 좌우명 중 하나는 ‘흥분하지 말 것’이다. 법관생활 초기에는 잘못된 것을 보고 흥분한다는 것을 진지함 내지 정의감의 자연스러운 표출로 생각한 것 같다. 물론 그때야 지금보다 혈기가 훨씬 왕성할 때이니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지만, 사실 지나고 나서 꼭 후회 끝에 깨달은 바는 나의 흥분된 반응은 진지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남의 오류에 대한 응징의 충동을 참지 못한데서 나왔다는 것이다. 판단의 옳고 그름을 떠나 과도한 흥분은 타인과의 ‘소통’을 방해한다. 이는 다시 좀 더 올바를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한다. 블로그도 마찬가지이다. 한 블로거가 언급한 '주연강박증' 은 이에 대한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블로거들의 논쟁 얼마 전 일단의 블로거들 사이에 한동안 논란이 되었던 포스팅이 있었다. 물론 애초에 시작된 글이 다소 도발적인 표현을 사용한 게 발단이 되긴 하였지만 그 후에 이어진 논의의 경과도 여러모로 아쉬움을 준다. 약간 과장하면 모든 이들은 서로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대부분 저작권에 내재한 가치의 충돌을 이야기 했고, 인터넷의 특수성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으며, 공유라는 것이 결코 강요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점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서로들 너무 심각했고 흥분했기 때문인지, 같은 것을 고민하고 있었던 블로거들이 모여 펼쳤던 주장들의 상당 부분은 간략하게 정리하면 “나가라”, “니가 나가라”의 외침이다. 물론 ‘진지했던’ 몇몇 블로거들의 글도 만날 수 있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너무 심각함’이었다. 이 이야기를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너무 심각했던 블로거들에 대하여 나 또한 심각하게 반응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그 건에 대한 나의 단상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아 달라는 뜻이다.^^ 위 논의 과정을 보면 자주 언급되는 명제가 하나 있음을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저작물은 다른 재산과 다를 게 없으며 따라서 저작권은 다른 재산에 대한 소유권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저작권을 저작물에 대한 소유권으로 표현한 경우도 있었다. 저작권과 소유권의 본질적 차이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저작권과 소유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소유권은 목적물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전부를 지배하는 전면적·일반적인 권리로서 다른 이의 침해를 배제하고 그 소유물을 자유로이 사용·수익·처분할 수 있는 독점적․배타적인 권리이다. 게다가 존속기간의 제한도 없고 소멸시효에도 걸리지 않는 항구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하면 저작권은 그 내용상 배타적인 지배권으로서의 성질을 갖고 있기는 하나의 완전한 권리가 아니라 몇 개의 개별적 권리의 집합에 불과하다. 즉 저작권은 비록 저작권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은 공표권, 동일성유지권, 성명표시권 등의 저작인격권에 속하는 권리와 복제권, 공연권, 방송권, 전송권(2007. 6. 29. 시행되는 개정 저작권법에서는 방송권과 전송권을 포함하는 상위개념으로서 공중송신권을 신설한바 있다), 전시권, 배포권, 2차적저작물 작성권 등의 저작재산권에 속하는 개개의 권리가 포함된 패키지이다. 그리고 그 개개의 권리의 합은 소유권보다 훨씬 작다.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는 배타적․독점적 재산권들은 저작물의 개수를 늘리거나(복제, 2차적저작물 작성) 저작물을 다수에게 제공(공연, 방송, 전송, 전시, 배포)하는 행위를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에 한정되어 있다. 소유권과 달리 저작물의 단순한 이용, 즉 저작물의 감상이나 점유사용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서점에서 읽고 싶은 책을 그냥 가져가면 절도이지 저작권침해가 아니다. 극장에 몰래 숨어들어가 영화를 보더라도 저작권침해가 아닌 건조물침입에 해당할 뿐이다. 결국 권리의 성격이 배타적․독점적이기는 하여도 결코 전면적․일반적 지배권은 아니며 단지 특정 목적을 위해서 개별적으로 인정되어온 재산권의 패키지가 저작권이다. 게다가 저작권은 존속기간이 정해져 있다. 이는 저작권을 소유권과 같이 생각할 수 없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한정된 기간 동안만 권리자에게 특정한 경우의 독점적인 지배권을 부여하되 그 기간이 종료되면 모든 권리를 public domain에 넘겨버리는 아주 독특한 체제를 갖고 있다. 결국 저작권자는 인정되는 개개의 권리에 포섭되는 경우에만 자신의 지배권을 주장할 수 있으며 비록 타인의 행위로 저작물에 대한 이익이 침해되었다 하더라도 현행법상 인정되는 권리가 아니라면 그 행위를 배척할 수 없다. 따라서 위에서 보았듯이 권리자들은 무단 감상을 제한하기 위하여 저작권이 아닌 다른 방법을 이용하여 왔다. 내용을 보지 못하게 꼭꼭 숨기거나 쉽게 접근하지 어려운 상태를 유지한 다음 대가를 지급한 사람들에게만 감상을 허락하거나 접근의 편의를 제공하고 이러한 규칙을 깬 사람은 저작권이 아닌 소유권 등의 다른 권리에 대한 침해로 규제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관계에 변화가 일어난다. 인터넷에 올라간 상당수의 콘텐츠들은 사람들의 감상을 제약하지 아니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감상을 위한 시공간의 제한이나 물리적인 어려움도 없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자유로운 액세스(access)가 가능해졌다. 여기서 혼란이 시작되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위와 같은 저작권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었다. 자유로운 감상이 허락된 저작물을 마치 자유로운 모든 이용이 허락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유로운 접근의 허용은 저작권과 관계가 없는 것이었음에도 이를 저작권의 포기 내지 불행사에 대한 의사표시로 받아들이거나 무의식중에 그런 취지로 단정하였던 것이다. 온라인상에 있는 다른 이의 콘텐츠를 자신의 웹페이지나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도 별다른 죄의식이 없었던 것도, 인터넷 이용자들에 대한 저작권위반의 단속 뉴스가 나올 때마다 그들이 그토록 경기를 일으켰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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